[운전] 여유있는 운전이 그립다 - VIDEO 자동차와 생활

위반 운전자에 대한 벌칙보다 모범운전자에 대한 인센티브가 더 절실한 거 아닌가

미국 자동차 사고 통계를 보면, 이른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사고보다는 음주, 약물복용, 졸음, 과격 운전이 대다수 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나오고 있단다. 이쯤 되면 신의 영역이라고 할 우연한 사고(accidents)라기 보다는 인재(incidents)라고 해야 한다. 교통사고가 운전자의 평소 습관과 태도에 좌우되는 정도가 너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벌칙은 사람이나 재물에 비슷한 손해를 입힌 다른 범죄자와 비교해서 경미하기 이를 데 없다. 게다가 그들은 점점 문란하고 난폭해지고 있는 반면, 우리 사회의 경우 제도나 법 적용 이전의 도덕적 규범에 의한 사회적 자율질서도 그 기능을 상실한 듯해 일반 운전자들이 위반 운전자들을 바라보며 도로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다가온다.



서울에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도대체 몇 번의 교차로 혼잡과 S자 난폭운전을 경험하고 있는 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남녀 운전자 구분 없이 신호 없는 재빠른 끼어들기 시도가 다반사이고 그런 끼어들기를 방지하기 위해 앞차와의 간격을 바짝 좁히는 뒷차의 공격적 운전에 진땀을 흘리고 나니 내가 정말로 서울에 돌아왔다는 걸 확실하게 느낀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다르게 해석되는 황색신호, 속도를 내라

교차로에서 빨강-노랑-녹색으로 이루어진 삼색 신호등 중 노랑(황색)신호는 아직 교차로에 진입하지 않은 자동차에게는 진입하지 말라는 신호다. 그러니 황색신호를 보면 교차로 정지선에 또는 횡단보도가 있는 경우에는 횡단보도 이전 정지선에 정지해야 한다. 예외적으로 이미 교차로에 진입하고 있는 자동차에게는 신속히 교차로 밖으로 빠져 나가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내 운전자들에게 이러한 황색 신호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지 않은 것같다. 무엇이 문제일까? 근본적인 원인은 여유가 없는 운전에 있는 듯하다. 한국의 운전자들은 불행히도 제대로 교육받지도 않고, 남에게 해를 끼쳐도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제대로 규제되지도 않은 탓에 도로에 나가면 양보할 줄 모르거나 양보하기 힘든 여건 속에서 도로를 질주한다.

(출처: 고우영화실)


그런 그들에게 황색 신호는 한 편에서는 정지 상태에서 엑셀에 발을 얹는 부릉부릉의 신호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달리는 자동차에 힘을 빼는 게 아니라 더 힘을 가하라는 주마가편의 채찍질 신호로 읽힌다. 뭔가 잘못됐다. 한 템포 느리게 출발하고 한 템포 빠르게 감속하는 게 필요한데 오히려 정반대다.

양보없는 운전, 절대 내 앞에 끼어들 수 없다

사방에서 모여드는 교차로에서 걸핏하면 자동차들이 얽히는 상황이 너무나 쉽게 발생하는 이유다. 조금이라도 정체된 교차로는 이내 사방의 차들로 교통흐름이 급격하게 느려진다. 앞차가 진행을 못하고 교차로 한 가운데 서 있어도 내가 받은 신호가 녹색 진행신호이면 뒤차도 일단 교차로에 진입하고 보는 게 국내 도로의 현주소.

미국이라고 교통질서가 늘 잘 지켜지는 것은 아니고 거기에도 미꾸라지는 있지만, 그래도 막히는 게 뻔히 보이고 정체 상태인 교차로를 향해 무작정 내 자동차를 들이밀지는 않는다. 너도나도 불나방같이 뛰어드는 국내 운전자들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내가 가지 못하더라도 교차로의 꼬리를 물지 말고 한 번이나 두 번 정도는 신호를 기다리는 여유가 필요하지만, 그야말로 염원에 가깝다. 녹색 신호라도 그대로 진행하지 않고 교차로 상황을 보며 정지선에서 기다리는 차량에게 교차로로 진행하지 않는다고 뒷차들이 빵빵거리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그런 걸 의식해야 하는 정지선 운전자는 괴롭기만 하다. 인내심이 약해질 수밖에. 그런 참에 다른 방향의 차가 내가 먼저를 외치면 교차로는 누구도 가기 힘든 상황에 되어버린다.

창피함을 모르는 운전, 남보다 내가 먼저

직진 차선이 막히면 상대적으로 뻥 뚫린 좌회전이나 우회전 차선으로 질주한 다음 맨 앞에서 새치기하는 운전자들도 흔하다. 영업시간을 핑계대는 택시나 버스만이 아니라 자가용 승용차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까닭에 그런 지점에 으레 이를 차단하려는 말뚝이 박혀있는 곳이 많다. 그렇게 새치기하는 차량들이 많아지니 끼어들기가 도로주행에서 흔하게 벌어질 수 있는 자연스런 풍경이 아니라 모두 새치기로 인식되고 보통 운전자들의 끼어들기가 만만치 않다. 그렇기에 때로는 매우 억지스런 형태로 끼어들기가 나타나기도 하고, 때때로 인심좋게 끼어들기 공간을 만들어주는 고마운 차에게 비상등을 켜서 깜박깜박 감사의 눈인사를 해주는 경우도 흔하게 본다. 정말 팍팍한 도로운전 인심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운전자의 양심에 호소하지만, 그건 사회가 최소한의 도덕적 규범을 갖추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운전태도가 아니라 단순한 기능 테스트에 돈만 많이 드는 운전면허제도와 재발방지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한 실속없는 원포인트 교통단속이 희미해진 운전자의 양심과 여유의 불꽃을 살리지 못하고 무질서를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오늘 아침에는 교차로에서 구청 공무원들과 경찰관, 그리고 많은 모범운전자들이 어깨 띠를 두르고 교통 질서와 안전을 외치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과연 그들은 오늘 행사가 끝난 뒤 여유로운 운전, 양보하는 운전, 안전한 운전을 하고 있을까. 글쎄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아닐 것 같다!

덧글

  • 로리엔 2008/10/02 02:41 #

    글 잘 보고 있습니다. :)
    같은 현상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해석이어서 처음으로 글을 남겨봅니다.

    저도 한국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을 많이 느끼는 운전자였습니다.
    신호 잘 지키는데도 뒤에서 빵빵대지, 기껏 양보운전하면 또 뭐라고 하지....
    목동 뒷길의 한적한 도로에서 밤 11시에 신호 제대로 지키면서 운전하던 사람은 저밖에 없었습니다.

    미국 오니까 좋더군요.
    여유롭게 운전하지, 양보 잘하지, 좀 어리버리해도 뭐라고 안 그러지,
    1년에 클락션 소리 듣는 횟수는 손에 꼽을만 하지.
    저 같은 운전자에게는 정말 천국 이더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운전자가 더 양심적이라거나, 도덕적 규범을 더 갖췄다거나, 더 좋은 인센티브 시스템을 갖췄다거나, 운전면허 시험이 더 철저하다거나(운전 태도를 더 많이 본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교통단속이 재발단속에 더 촛점을 두고 있다거나 한 것이 그 이유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철저한 네거티브 시스템을 통해서 이 제멋대로의 운전자들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말씀하신대로 좀 한적한 도로 상황도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웬만한 도시에서는 두세블럭을 지날때마다 경찰차 한두대 만나는 것은 일도 아니고,
    조금만 위반해도 바로 따라붙어서 경광등 켜고,
    웬만한 상황에서는 적어도 warning ticket 정도는 날려주고,
    이런거 쌓이면 보험료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심지어는 보험 안 받아주고,
    사고라도 한번 내면 변호사 배나 불려주고 파산하는 상황에서는
    얌전하게 운전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으니까요.

    제가 사는 이 시골 동네에서는
    경찰들이 속도위반이나 노란신호 위반은 신경을 안 씁니다.
    자연히 제한속도보다 15마일 정도 더 빨리 다리는 것은 예사이고
    노란 신호등에서는 엑셀 더 밟고 지나갑니다.
    처음와서 운전했들 때는 황당했죠.
    미국은 이렇지 않은 줄 알았는데.....

    반면에 이상하게 STOP 표지 위반이나(반드시 완전히 정지해서 3초 정도 후에 출발해야함)
    차선위반 같은 것에는 깐깐하죠.
    그러니까 모든 차들이 이것은 철저하게 지킵니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반면에 시카고에 가 보니까, 정말 가관이더군요.
    이건 뭐 우리나라 저리가라입니다.
    도로에서 제 차선에 붙어있는 차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지그재그 운전에,
    조금만 천천히 가도 위협운전에 클락션 울려대고.
    도심에서는 끼어들기도 예사.
    미국도 삶이 빡빡하면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미국에서는 음주운전이 많죠.
    단속을 잘 안 하니까요.
    음주운전이라는 것이 확실하지 않으면 잡지 않다보니가,
    한국 분들도 맥주 한두병 마시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운전하죠.
    한국 같았으면 다 대리운전 부르거나 택시타고 들어갔을 사람들인데.
    아마 미국에서도 길 막고 음주측정 같은 것을 수시로 하면
    금새 음주운전 사라질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특히 대도시 사는 사람)하고 이야기 해 보니까,
    오히려 한국이 더 운전의 천국이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맘놓고 막 운전해도 뭐라 그러는 사람이 없었다고.... -_-;;;
  • 얼음차 2008/10/08 11:12 #

    로그인하지 않으면 덧글 작성이 힘든지라, 그저 고맙습니다. 하루에 수백명이 다녀가시지만 이렇게 글을 남겨주시는 분은 손에 꼽습니다.

    로리엔님 말씀 대로 제가 좀 오버한 면도 있을 겁니다. 사람이 많은 곳은 어디나 유사하다라는 말씀에도 100% 동감합니다.

    하지만 어느 사회나 두 가지 큰 규범이 상호 보완하며 사회를 지탱한다고 합니다. 님께서 보시기에도 미국은 도덕이나 윤리라는 사회적 규범은 몰라도 님의 표현대로라면 네거티브시스템인 강력한 법규범의 실행을 통해서 질서가 유지되고 있지요.

    저는 미국에서 그 두 가지가 모두 기능하고 있음을 본 것 같습니다. 강압적인 방식만 가지고서는 "여유"를 품은 운전이 일시적으로는 몰라도 습관화되기 힘들겁니다.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려면 둘 모두가 필요할 겁니다. 물론 어디나 상대적이겠지요.

    제게는 국내 도로에서 그 둘 모두를 보기가 아직은 힘이 드네요. 다시 한 번,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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